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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허니와 클로버 대사모음

by AttractiveS 2019. 6. 11.

아아 그렇구나. 조용하고 태평하면서도 조금은 들뜨는 봄.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난생 처음 봤다. 
이거 참. 나까지 가슴이 설레고 말았다. -마야마- 

(모리다가 왜 인기있냐는 질문에)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기 때문 아닐까? 이 메뉴얼한 사회에서는 워낙 귀하니까. 그런 남자가.  -슈이치- 

모리다 선배가 인기있는 건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기 때문'. 하지만 여자친구가 생기지 않는 건 '남의 말에 전혀 귀기울이지 않기 때문'. 
그야말로 '장점과 단점은 종이 한 장 차이'.  -다케모토- 

마야마는 바보야. 생긴 것만 멀쩡해서 남한테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어하는, 예의차리지 않아도 되는 상황인데 늘 지레 겁먹고 도망쳐. 
그 여자 일도 어차피 자기 손에 넣을 수 없다고 결론 짓고는 스타일 구길까봐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하는거야. 
아주 멍청이, 바보야.  -야마다-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는데, 마야마가 내 마음을 눈치채고 있는 것 같아서. 
그 여자도 이미 눈치채고 있고 그런데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거라면 그의 사랑 또한 이루어질 수 없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언젠가 이런 저녁 놀 속에서..그도 혼자서 울까. 그런 생각을 하면, 도무지 눈물이 멈추질 않아.  -야마다- 

그래.. 굉장하다 너. 사랑하는구나. -모리다.- 

왜일까. 나는 그때까지 내내. 어른이 된 여자는 자신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일 따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언젠가 비디오로 봤던 흘러간 영화에서 나왔던 노래로, 
아주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그 목소리에, 나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마야마- 

그때는 그때고. 선택의 폭은 넓은 게 좋지. 중요한 건 그 중에서 스스로 선택하는 거니까. -리카- 

하구미의 눈으로 본 달과, 내가 보는 달은 다를까. '완전히 똑같지' 않아도 괜찮아. 그저.... 
하늘에 덩그러니 떠있는 저 달이 하구미의 눈에도 노랗고, 둥글고, 부디 상냥하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다케모토- 



아무도, 누군가의 대신이 될 수는 없어. 나도 처음엔 돌아가신 네 아버지 대신 미츠씨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어. 
그런데 그게 잘 안됐어. 난 유이치 씨의 자리를 채울 수 없었어. 가족에게 대역이란 없다는 걸 알았지. 
그래서, 나는 나대로, 최선을 다해 미츠씨 곁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카즈 씨- 

그런 소리 마. 그런 귀찮고 무거운 짐 속에 애정이란 게 들어있는 거야. 부모란 고마운 존재야. 
세상에 또 없다구. 그렇게 공짜로 지겨울 만큼 애정을 주는 사람은.  -슈이치-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을 가장 좋아해준다」 
고작 그 정도의 조건인데도, 왠지,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이대로 언제까지나, 영원히.  -야마다- 

「세상」같은 막연한 것에 필요힌 존재가 되기 보다는, 「특정한 누군가」가 필요로 해주는 편이, 인간으로서 행복한 게 아닐까?  -다케모토- 

눈 한번 깜빡이지 않는 옆얼굴을 보고, 그녀가 눈과 머리, 코며 귀까지 전부 사용해 스케치를 하고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이 기린과 풍경을 통째로 삼켜, 도쿄로 돌아가 캔버스에 쏟아낼 것이다. 소화를 할 수 있든, 할 수 없든.  -다케모토- 

어이, 야마다. 왜 나같은 놈을 좋아한 거야. 
난, 네가 참 예뻐. 그래서 언젠가 네가 나보고 좋아한다고 한다면 확실하게 거절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랬다간 네가 어딘가로 가버릴 것 같아서.. 그래서 내내, 네게서 도망쳐 다녔어. 
그런데 넌 계속 날 보는 거야. 널 보면 마치 나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아팠어. 아아, 리카씨가 보는 내 모습이 이런 걸까 싶어서. 
꼴사납다느니, 집요하다느니, 그런건 이제 아무래도 좋아. 폼 잡아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 
난 여전히 꼴사나운 모습이고...그녀를, 포기할 수 없었어.  -마야마- 

마야마, 네가 좋아.. 좋아. 너무 좋아. 좋아.. 마야마, 좋아. 좋아. 너무 좋아...  -야마다- 

좋아한다는 말들이 하나씩 중얼거릴 때마다 뚝뚝 마야마의 등에 떨어져 물들어갔다. 
마야마의 등은 넓고 셔츠의 칼라 언저리에서는 따뜻한 살냄새가 났다.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왠지 그리운 냄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그저, 따뜻하고, 그립고, 아프고, 가슴이 찢어질 만큼 달콤한.  -야마다- 

난, 최선을 다해 하구미를 소중히 여기자고 그렇게 결심했었어. 하지만 사실은 내심 불안했어. 
이런 도쿄같은 곳으로 아이를 끌어낸 게 정말 잘한 일일까 하고. 정말 하구미를 위한 일일까 하고. 그저, 내 이기심이 아닌가 하고..  -슈이치- 

부적 주머니 만들었어. 이제 클로버만 넣으면 돼. 교수님한테, 일 잘하라고.... 
다치지 말고, 감기 걸리지 말고, 건강 하라고... 교수님의 꿈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하구미- 

하구미 : 교수님! 있잖아, 없었어! 네잎 클로버. 어..어떡하지? 없었어. 그런거, 어디에도. 
슈이치 : 여태까지 찾았어? 나를 위해? 
하구미 : 왜지? 모두들.. 많이, 함께, 찾아줬는데.. 
슈이치 : ...그래. 괜찮아. 못 찾았다느니, 그런 소리 하지 마. 난 이미 하구미한테 많이 받았으니까. 

다함께 손을 씻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식탁에 앉아 모두의 얼굴을 둘러보면서, 
나는 멍하니, 아까 제방에서 올려다보았던 파란 하늘을 떠올리고 있었다. 
네가 있고, 모두가 있어.. 단 하나의 것을 찾던.. 그 파란 하늘과, 바람의 냄새와, 그리고.. 
-세월이 흘러, 모든 것이 추억으로 바뀔 날은 틀림없이 올 것이다. 하지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생각나겠지.  -다케모토- 

「포기」라는 건 어떻게 하면 되는 걸까.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그대로 행동하는 걸까. 
그 뒤의 선택은 전부 「왜냐하면 포기했으니까」로 정리해 버리고, 내 본심에서 반대로 반대로 가면 되는 걸까. 
그러면 언젠가, 그 갈색 머리칼의 내음도, 차가운 귀의 감촉도, 셔츠를 통한 등의 온기도, 전부 전부 다, 
사라져 없어질 날이 올까. 가슴의 이 아픔 조차도, 전부 전부 다 흔적도 없이?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야마다- 



희마한 박달나무의 내음 속에 오렌지 색 등이 켜진다. 작년까지는, 이 등불 속 어딘가에 그가 있었다. 
일부러 일거리를 만들어서는 그가 있을 법한 장소를 몇 번이나 지나다녔다. 
아주 잠깐 이라도, 모습을 보고 싶어서. 말을 걸 수 있다면..하고 생각하면서.  -야마다- 

모리다 선배다.. 하구미는 눈치챘을까? 어째서 난 가르쳐 주지 않은 걸까? 가르쳐 줄 걸 그랬나? 하지만 뭐라고? 뭐라고 말하면 되지? 
그 브로치를 만든건, 어쩌면 모리다 선배일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널,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다케모토- 

뜬끔없지만 왠지, 다함께 보내는 크리스마스는 이게 마지막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계속 눈을 깜빡였다. 마치 셔터를 누르는 것처럼. 이 순간이 내 마음 속 어딘가에 찍히면 좋겠다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몇번이나. 달콤한 케이크 냄새와 웃음소리 속에서..  -다케모토- 

2년은 긴 시간이야. 게다가 넌 내내 그녀 곁에서 무척 사이좋게 지냈잖아. 그 어려운 아이를 상대로. 
그렇게 조금씩 쌓아올린 신뢰니, 그런 가장 중요한 것까지 「싸우는 게 싫어서」라는 이유로 전부 내버리려 하는 건 아니야?  -마야마- 

「안된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쉽게 싫어질 수는 없잖아. 게다가, 이런 기분은 설령 사귀는 사이가 될 수 없다고 해서 
「아, 네, 알겠습니다」하고 휘리릭 사라져 버릴 정도로 간단한 건 아니니까.  -야마다- 

어릴 때 난 관람차가 무엇 때문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느려터지고 그저 높기만 해서, 딱 한번 타보고는 질려버렸다. 
제트 코스터에 루프 슬라이더, 가슴이 콩닥거리는 놀이기구 외엔 눈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젠, 왠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관람차라는 이 놀이기구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천천히 하늘을 가로질러 가기 위해 있는 것이다. 
아마도 「조금 무섭다」라느니 하면서...  -다케모토- 

정말 신기해. 바로 몇 년 전까지 우리는 서로 얼굴도 몰랐는데, 지금은 이렇게 마치 당연하다는 듯 함께 지내고, 
석양의 하늘을 올려다 보며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다. 
스피커에서는 오르골 소리로 내내, 어린 시절 영화관에서 보았던, 그리운 애니메이션의 주제곡이 흘렀는데, 
세상이 아름다운 건 널 태우고 다니기 때문이라느니 분명히 그런 가사였는데..라고 생각하면서, 
네 곁에서 본 석양은 역시.. 가슴이 먹먹해질 만큼 아름답고, 아름다워서.  -다케모토- 

목표를 정하고 발판을 찾아 곧장 앞을 보고. 그래, 그는 어른이 되는 걸 두려워 하지 않아. 내가 좋아했던 사람.  -야마다- 

우리가 교수님 나이가 될 때까지 앞으로 10년 정도. 그 무렵 서른 남짓한 우리는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먼훗날의 일을 생각해 봤자 오늘은 내일로, 내일은 그 다음날로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다. 완만하게. 
언젠가 우리도 좀 더 어른이 되어, 마치 어린시절 따위 없었던 것처럼 여겨지는 그런 날이 올 것이다. 평등하게.  -다케모토- 

재미없었어.. 하나도 재미없었어. 걷고, 쫒아 가느라 힘들어서. 다..다리 아프고 화..화장실 가고 싶은데 마..말도 못해서 정말.. 
밥도 왠지, 막상 눈 앞에 있으니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어서.. 뭐가 필요한지 하나도 생각이 안 나서 전혀 사지도 못하고. 
왠지 그냥..빨리 돌아오고 싶어서.. 그런거 싫어. 교수님이랑 있는게 훨씬 더 좋아.  -하구미- 

「나 말이야, 언제까지나 오빠랑 있을 거야. 오빠가 제일 좋으니까.」 
소녀의 순수한 말에 모두 웃는다. 상냥한 시선을 던지며. 시간이 흐르면 눈처럼 사라질 소원이란 걸 모두 알고 있지만. 
그렇기에 더욱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슈이치- 

하구미 말이야, 일전에 모리다랑 둘이서 재료 사러 갔었지? 그날 돌아와서 나한테 말했어. 
잔뜩 풀이 죽어서는, 화장실에 가고 싶단 말도 못하고, 막상 눈앞에 있으니 밥도 먹을 수 없었다고. 
그래서 싫다고. ..정말 바보야. 그거야 당연히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건데.  -슈이치- 

그녀가 내 앞에서는 자유롭게 행동하는 게 기뻤다. 내 앞에서 맛있게 푸딩을 오물거리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함께 있으면 가슴이 벅차, 음식을 삼키기도 괴로운...그런 느낌을 사랑이라고 한다면 정말로.... 나만 사랑했구나.  -다케모토- 

이 바보야!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정말 모르겠어. 언제나 늘, 그런 식으로 멋대로... 
그러다 다 잃고 말 거야! 정말이라구! 알겠어?!  -다케모토-(떠나버린 모리다에게 공항에서) 


「하구미. 모리다 선배가 돌아왔으면 좋겠어, 돌아오지 않았음 좋겠어?」 
「돌아오지 않았음 좋겠어. 하고 싶은 일, 전부 다 해볼 때까지.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어.」 
나는 대체, 어떤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을까. 그녀의 대답은, 사랑에 빠진 연약한 소녀의 그것이 아니었다. 
훨씬 곧고, 훨씬 강하고, 훨씬.. 맑았다..    -다케모토- 

그 녀석은 알다시피, 재능을 초과해서 실은 폭주열차 같은 인간이니까. 마음껏 달리게 내버려 두는 게 최선이란 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하지만 느닷없이 미국이라니. 그 녀석의 장래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참견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었어. 
그 녀석은 남의 말 따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아. 하지만, 네가 만든 것에는 꽤나 마음을 쓰더군. 
「그렇게 커다란 걸 만드는 녀석은, 나 말고는 처음 봤어」라면서.  -탄게 교수님-(하구미에게) 

일사불란하게 캔버스과 격투하는 그녀의 뒷모습과, 그 날 밤 혼자 나무망치를 휘두르고 있던 모리다 선배의 뒷모습. 
두 사람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나는 들어갈 수 없는 세계. 그리고..그 장소에 거리 따윈 없는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서, 어떤 대답을 바라고 있었던 걸까. 
언제나처럼 울먹이며, 「어서 돌아왔으면 좋겠어」라고 그렇게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정말 정말 좋았을 텐데..  -다케모토- 

처음에, 아르바이트생으로 그 사무실에서 그녀와 함께 일했을 때는, 필사적으로 일에 매달리는 그녀를 뒤에서 돕고 싶었어요. 
그런데 얼마 안가, 그래서는 안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런건.. 그녀를 혼자 걷게 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내내 함께 있고 싶다면, 그녀를 짊어지고 걸을 수 있을 정도의 인간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마야마- 

나 참. 젊다는 건 정말 성가셔. 풋내나고.. 고지식하고.. 
애써 시간이 걸리는 방법을 선택하다니. 둘이 함께 성장해 가는 길도 있을텐데.  -슈이치- 

여름이 시작될 무렵 베란다 화분에 차조기와 바질을 심어보았다. 녀석들은 여름 햇살 속에서 쑥쑥 자랐다. 
하지만 7월 태풍으로 제일 키가 큰 차조기 한 그루가 똑 부러지고 말았다. 그걸 보고 엄마가 말했다. 
「그건 이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으니 부러진 부분을 꺾어내라. 
그러면, 새로운 줄기가 자라고 새로운 잎사귀가 다시 무성하게 돋을테니까」라고. 
하지만 난 망설여졌다.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줄기 끝에 붙어 있는 작은 잎사귀들을 아직도 싱싱했던 것이다. 
부러지기 전과 무엇 하나, 달라진 것 없이..  -야마다- 

「잘 어울려」그 단 한 마디를 듣고 싶어서. 머리를 올리고, 옷을 고르고, 그 소동을 피우며 입고, 익숙지 않은 게타를 신고, 가슴 설레하고..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의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 간절한 소원을 담아, 아주 잠깐 잠깐 동안만 이라도, 
당신의 마음이 내게로 기울어주지 않을까 하고... 
어째서 난 자꾸 꿈을 꾸고 마는 걸까. 꾸고 또 꾸고. 질리지도 않으며. 마치 그게 내 유일한 재주인 양.  -야마다- 

며칠 뒤, 베란다에 나가 보니, 부러진 차조기가 자기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흙 위에 뒹굴고 있었다. 
엄마 말이 옳았다. 이건 부러진 부분을 잘라내는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깨끗이 마무리를 짓고 새롭게 줄기를 뻗치는 것이 최선이었던 거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도 망설이고 만다. 어쩔 도리도 없이.  -야마다- 

가끔 생각한다. 목소리란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는 것일까. 불안해진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재생을 반복한다. 
기억난다. 아직 기억해낼 수 있어. 하지만 만일, 이대로 두번 다시 만날 수 없게 된다면. 
마지막까지 남는 건 모습일까, 아니면 목소리일까.  -마야마- 

어느날 전철을 타고 가다 심심해서 휴대폰의 스케줄을 보니 2099년까지 있었다. 2099년 내 생일은 일요일이었다. 
그 날이 되면 울리도록 차임을 설정해 놓았지만, 아마도 그 때면 나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아아, 나도 언젠가 죽는구나」하고.  -마야마- 

괜찮아. 빙글빙글 돌아도 괜찮아. 그냥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 살아 있는 동안에.  -슈이치- 

마야마 : 야마다는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가벼운 기분으로 접근하는 녀석한테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구요. 
슈이치 : 이봐 마야마. 네가 야마다를 소중히 여기고 아껴서 그렇게 인형 같은걸 따주고 싶어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앞으로 매년 평생의 모든 축제 때 함께 있어 줄 수 없다면, 네겐 참견할 권리가 없는거야. 

맞아. 알고 있어. 연애에, 만약이란 얘기는 해선 안된다는 것. 하지만 그래도 하다못해, 지켜볼 수만 있다면..하고 바라는 이 마음조차도. 
절대 자기만족이 아니라고 잘라 말할 수 없다는 것도...  -마야마- 

2년 전 여름, 이런 달이 떴던 밤. 일을 마치고 욕실에 쓰러져 있던 그녀를 침대에 옮겨놓고 나는, 몇 시간이나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꿈에서 깬 그녀의 눈이, 순식간에 투명해져 가는 것을 보며 나는. 난생 처음, 사람의 마음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마야마- 



그와 있으면 무척 편했어요. 왜냐하면 그 아이는 하라다를 모르고...예전의 나도 모르니까. 
그래서 나, 그 아이와 있을 때는 다 훌훌 털고 일어난 척 하지 않아도 돼서 좋았어요. 아무 생각 없이 일에 집중할 수 있었죠. 
그 동안, 그 아이는 내내 말없이 그냥 곁에 있어줬어요. 그런 그에게서 난 아마, 무척 큰 위안을 받았던 것 같아요.  -리카- 

그녀는 그 사고 후, 늘 자신을 책망해 왔어요. 조금이라도 자신이 「즐겁다」거나 「기쁘다」생각되는 일이 있으면, 
순식간에 죄책감을 느껴 스스로 그것을 멀리 하고 말죠. 마야마, 당신도 그렇게 멀리한 것들 가운데 하나일지 몰라요. 
하지만 난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자신을 한없이 몰아세우다 닿게 되는 곳은 대체..대체, 어디란 말입니까.  -아사이 씨- 

엔진을 끄자 순식간에, 조용히, 빗소리가 차안을 가득 채웠다. 오렌지빛 라이트가 안개비에 뿌옇게 흐려 있었다. 
아무런 얘기도 없이, 둘이서, 그저 묵묵히, 빛나는 다리를 보고 있었다. 
자판기 종이컵에 담긴 커피는 싸구려 냄새가 났지만 그래도 뜨거워서, 한 모금 마시자 그 김으로 시야가 일그러졌다. 
필사적인 심정으로 한없이 몸부림쳤건만, 내가 안 것은 아주 작은 것.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는 것..헤어질 수 없는 이유 따위, 이 고통 하나로 충분하다는 것.. -마야마- 

마야마 : 여기 나갈 때 내가 그랬잖아요. 기다리지 않아도 돌아오겠다고. 병원에서도 말했지만, 다시 한번 말하겠어요. 
        날 하라다 디자인에서 일하게 해 주세요. 전보다는 훨씬 도움이 될 거예요. 
리카 : 보나마나 또 마찬가지 일거야. 난 다시 널... 
마야마 : 괜찮아요, 상처 줘도.... 상처 받지 않을 테니까. 

달이 그녀를 부른다. 반복되는 달콤한 멜로디. 하지만...나는 살며시, 그녀의 귀를 막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이곳으로 돌아왔다.  -마야마- 

교수님...난 지금까지, 마야마가 바보, 멍청이에 정말 해도 너무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좋아하고 좋아하고 오랫동안 좋아하고 있는데. 왜 나는 아니지?」하고.. 
그런데 그럼.. 내가 그 입장 이라면? 만일 상점가 오빠들이 「이렇게 좋아하는데 왜 우리 가운데 누군가는 안되는 거지?!」라며 날 다그친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좋아했으니까 이 중에서 누구 하나 골라」라고 한다면 못 골라요. 소중하지만, 정말 소중하긴 하지만 함께 할 수는 없어요. 
교수님...그래요...이제야 겨우 알겠어요. 마야마는 아마 이런 기분이었을 거예요.  -야마다- 

노력하든가, 포기하든가, 둘 중에 하나밖에 없겠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란 언제나 대게 이 두가지 뿐이야. 
모두에게는 정직하게 야마다의 감정을 얘기하는 수밖에 없어. 나머지는 그 쪽에서 결정할 일이지. 노력하든가, 포기하든가. 
그들이 선택할 거야. 야마다도 그랬잖아? 모두 마찬가지야. 상점가 오빠들도, 마야마도, 하구미도, 나도, 다케모토도.  -슈이치- 

하지만 나는, 이 때 한 가지 거짓말을 했다. 사실 선택은 세가지가 있다. 
하지만, 두 가지밖에 없다고 믿는 편이 길이 열리니까. 세번째의 답을 나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슈이치- 

내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도,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게 좋았고 그것만을 믿고 집을 나왔다. 
하지만..4년의 세월은 나 자신을 알기엔 너무 짧아..구직활동을 시작한 뒤에도, 나는 그저 우왕좌왕 헤매기만 할뿐. 
하지만 이제 알겠다. 내게 왜 헤매는지. 지도가 없어서가 아니야. 내게 없는 것은, 목적지야.  -다케모토- 

그녀의 미소를 본 순간 왠지, 그녀를 오랜만에 만나기라도 한 듯,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나는 내 문제밖엔 보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반 년 간 내내. 이렇게 가까이서 그동안 그녀는 내내, 날 걱정해 주었는데. -다케모토- 

많은 말들이 밀려오지만, 모두 하나같이 너무 작위적이라 부끄러워서 입에 올리지도 못하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갈색 머리칼이 겨울 햇살에 투명하게 비치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내가 먼저 말해놓고는, 마야마의 입에서 나온 「둘이서」라는 말에, 움찔할 만큼 가슴이 아파, 그런 나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  -야마다- 

알겠냐? 넌 내가 지금까지 키워 온 수천 명의 학생 가운데서도 1,2위를 다투는 재능의 소유자야. 
꽃으로 치면 꽃송이가 아주 큰 장미인 셈이지. 
하지만 모리다, 장미는 분명 아름답지만, 꽃을 계속 피우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지. 
벌레에게 잡아먹히고 병과 싸우고, 자신의 가시로 인해 자기 자신과 주위에 상처를 주기도 해. 
생기 잃은 커다란 장미는 씩씩하게 활짝 핀 민들레의 아름다움엔 당해낼 수 없는거야.  -탄게 교수님- 

이보게 하나모토 군. 선생질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야. 아무리 귀여워해도 상대는 졸업해서 떠나기만 하고. 늘 배웅만 하는 인생인걸. 
졸업하고 나면 그 다음에 만나는 건 몇 년이나 지난 뒤. 까닥 잘못하면 두번 다시 만날 일도 없지. 
대체 선생이란 건...영원히 졸업하지 못하는 학교의 망령같은 존재가 아닐까? 어때,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하나모토군..  -탄게 교수님- 

멈춰있던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멈춰있었던게 아니야. 시간은 흘러 멀어지고 있었던 거야. 
마치 폭포처럼. 지난 4년 내가 그저 우뚝 서 있기만 했던 동안에.  -다케모토- 



들통난 짝사랑이란 게 가망이 없긴 해도 편하긴 하니까. 죄책감 때문에 상대방도 상냥하게 대해주고. 
이제 더 이상 최악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테니, 새로 상처 입을 일도 없고.  -노미야- 

그때. 관람차가 밑으로 다 내려가기 전에. 세상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그 정도로 그 석양은, 아름다웠다.. 숨도 쉴 수 없을만큼.  -야마다- 

눈치채고 있었다. 노미야 씨가 찍은 방대한 양의 자료 사진 속에 그것이 이따금 섞여 있다는 걸. 
무슨 생각으로 셔터를 누른 걸까. 나는 모른다. 
하지만, 그가 찍은 관람차, 그것은 하나 같이 어찌된 일인지, 그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건 아마도 오랫동안 그의 안에 있던 장소로... 
그러니까..다음에 만나면 물어봐야지. 처음으로 관람차를 탄 소감을.  -마야마- 

왜지.. TV나 잡지에서 사랑은 즐겁고 행복한 색깔을 띤 채 늘어서 있는데. 나의 사랑은, 어째서 이렇게, 무겁고, 못났을까. 
나 자신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은, 내가 아닌 누군가의 불행을 바라는 마음과 동전의 양면처럼 세트인 경우가 있는 것 같아. 
그렇다면... 그럼 난, 대체 무엇을 바라면 되는 걸까.  -야마다- 

걱정했던 건 오히려 이쪽이야. 나도. 마야마도. 네가 미처 모르는 것 같아서 말해두는데, 넌 진짜 행복한 인간이야! 
내내 네 생각만 했다구! 다 큰 남자 둘이서! 목을 있는대로 빼고는 그것도 밤새도록! 
그러니까.. 될 대로 되라 그러지 마. 부탁이다. 응?  -모리다- 

모리다 선배는, 「미안해」「미안해」를 연발하며, 
「다음에 어디 멀리 갈 때는 TV 전화기를 두고 갈게」라고, 자뭇 진지한 얼굴로 약속해 주었다. 그리고 둘이서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 자신의 행복을 빌 수 없는 난, 대신 이 따뜻한 오른손의 주인의 행복을 휘엉청 뜬 달에 빌었다.  -야마다- 

교수님은 그렇게 말하고 웃었지만, 역시 내가 보기엔 대단한 분이고, 너무 부럽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그 기대에 부응해 간다. 자신의 자리를 찾은 것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다케모토- 

모리다 : 당신 알잖아. 그 녀석은 좀 더 큰 세상에서 살아가야 할 인간이라는 거. 
        전세계의 모두가 미술관에 가면 언제든 그 녀석을 만날 수 있어. 
        100년이 지나도 300년이 지나도, 본인이 죽은 뒤에도,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구 그 녀석은. 
슈이치 :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것외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 인생이 될거야.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여류작가가 얼마나 있지? 그 중에서 행복한 인생을 보낸 인간이 얼마나 있지? 
        아무리 그려도 아무것도 남지 않을지 몰라. 그래도 손을 쉴 수는 없어. 평생 마음을 쉴 수 없게 될지도 몰라. 
        그걸 과연, 행복이라 부를 수 있을까. 
모리다 : 그걸 돌보는 게, 당신의 역할이잖아. 
슈이치 : 그래. 「나의 역할이다」라고 말할 타입이 아니야..너의 왕자님은. 

하지만 그것이 정말, 하구미에게 행복일까. 정말. 아니라고 잘라 말할 수 있을까. 
아무리 뚫어지게 봐도, 내게는 보이지 않던 세계. 이루지 못했던 꿈과 동경. 
나는 그것을 하구미를 이용해 이루려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슈이치- 

괜찮아, 괜찮아. 답이 나오지 않을 때는 잠자코 손을 움직이는 게 최고지. 
집에서 머릴 싸매고 있든 누군가에게 답을 청해보든, 알 수 없을 때는 알 수 없는 거야. 
그런데 신기하게도, 온마음을 다해 손을 움직이다 보면.. 완성된 100개째 접시 위에, 그 답이 얹혀져 있는 경우가 있지.  -야마다의 교수님- 

안돼. 지금 필요한 건, 「왜 그래?」라든가, 「얘기 들어줄까?」라든가 그런 종류의 말이 아니야. 
그걸로는 어림없어. 그녀는 지금 전투에 돌입해 있는거야. 
하느님.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우는 것과, 그걸 찾지 못해서 우는 것 중에 어떤 게 더 괴로운가요? 
하느님. 하고 싶은 일이란게 뭐죠? 그건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는 거죠? 그걸 찾으면 강해질 수 있는 건가요? 
그저 내가 아는 것은 딱 하나.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말을 전부 총동원 해도, 그녀의 눈물을 멈추게 할수 없다는 것. 
그렇게 울고 있는 그녀에게서 조차 내가 느낀 것은.. 그저 끝없는, 강인함이었다.  -다케모토- 


내가 아직 어렸을 때,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어디에 가든 늘 함께있던,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 파란 자전거를 타면서.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난 어디까지 달릴 수 있을까.」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그 때 내가 시험해보고 싶었던 건, 대체 무엇이었을까.  -다케모토- 

외쳐보고야 비로소 알았다. 나는 그동안 두려웠던 것이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어쩌고 싶은지 모른다는 것이. 그 이유가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리고, 그래도 가차없이 흐르는 나날이. 
악을 쓰면서 빠져나온 터널 너머의 하늘은, 라이온 킹에서 보았던 아프리카의 석양처럼 숨막힐 듯한 오렌지색이었다. -다케모토- 

하구미는 「자신이 얼마나 나아갈 수 있는지」를 스스로 확인해 보고 싶은 거야. 
하지만  「얼마나 나가알 수 있는지」는, 자신외의 세계에 부딪쳐 그 방향으로 측정하는 방법도 있지. 
코다 교수님도.. 고생 많이 하셨어. 그래서 하구미를 보면, 자신이 떠오르고 마는 거야. 
난 생각해. 그건 양쪽 다 옳은 거야. 중요한 건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것을 「변명거리」로 삼지 않는 거야.  -슈이치- 

애초에 왜 난 뛰쳐 나왔던 거지? 어디로 가고 있었던 거지? 왜 달렸던 거지? 이대로 계속 가면 뭐가 있지? 
모두가 가고 싶어하는, 너무 먼 세상. 어떻게 하면 갈 수 있을까. 누가 좀 가르쳐 줘.  -다케모토- 


  
다행이다. 마야마가 없어서 다행이야. 여기에 없어서. 다행이야. 함께 있는 두 사람을 보지 않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야..  -야마다- 

쓸쓸하지. 하지만 그냥 그뿐이야. 이렇게 파도처럼 쏴아 하고 온다 싶다가 곧 쓰윽 빠져 나가거든. 
그게 계속 반복되는 게 문제긴 하지만. 뭐. 그저 그뿐이야.  -슈이치- 

아이가 아이인 건, 어른이 뭐든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점이야. 
나 참. 어른 좀 된다고 뭐가 달라지는데? 기껏해야 허리나 아프고. 지하철 계단에서 숨이나 차는 정도지. 
언제나 돌아가고 싶어하지만, 그게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걸. 아아, 히라다.. 보고 싶다. 나 정말 외로워.  -슈이치- 

어디까지 달릴 수 있을까 했다고 했지? 아직 답은 나오지 않았을 거야. 
그런 두리뭉실한 얼굴로 생글생글 웃을 바엔 이런 곳에 주저앉아 있지 말고, 적성이 풀릴 때까지 계속 달려 봐. 
방황할 거면 방황하고 달릴 거면 달리라구. 답 따위 아무래도 좋아. 처음부터 그런 건 없으니까. 
「본인이 정말 적성이 풀릴 때까지 해 보았는가」밖에 없는 거야.  -동량- 

발 밑만 보고 있으면 괜히 더 무서워져. 조금은 앞을 보는 게 좋아. 너무 앞만 봐도 안되지만. 
어릴 때, 횡단보도의 하얀 부분만 뛰어서 건너보곤 하지 않았나? 참 이상하지. 하는 건 똑같은데. 
밑이 정말로 보여, 「무섭다」는 감정 하나 갖게 되는 것만으로,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일을 할수 없게 되다니.  -신 씨- 

그 사람은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마야마는 내 얘길 어떻게 했을까.. 내 얘길 하긴 했을까. 「가엾다」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마야마는 그런 말 하지 않아. 그럴 사람이 아니야. 리카 씨와 나를 만나게 하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했던 것도..틀림없이 마야마의 배려. 
지금까지 내내 친절했으니. 아마. 앞으로도 계속 친절할거야.. 아마, 이 세상 끝의 그 끝까지라도. 
그저. 그저. 친절하기만 할 뿐. 그저. 그뿐.  -야마다- 

이렇게 모두에게 사정없이 민폐만 끼치고 잔뜩 풀이 죽어「사랑하는 마음에도 delete키가 있으면 좋을 텐데..」하고 중얼거렸더니 
「로맨틱하지 않아서 땡!」하고 말하며 붕대투성이의 모리다 선배가 씨익 웃었다.  -야마다- 

어린이답지 않은 그림이란 소릴 듣는 것도 알아.. 그거야 당연하지. 왜냐하면 내가 이젠 어린이로 있기 싫은걸. 
상을 받고 싶어서 그걸 목표로 노력하는 것 자체가 이미 전혀 「아름답지 않다」는 거 알아! 
그래도, 그래도 정말 열심히 그렸단 말이야. 이래 봬도.  -카즈키- 

「도달하고 싶은 곳」을 가졌을 때, 무아(無我)의 마음으로 그릴 힘을 잃었다.. 
「좋아하는 것을」「즐기며」라는 말은 아름다워.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구미- 

「굉장하다. 너무 아름다워.」선생님은 생글생글 웃으며 소리쳤다. 뭐야. 방금 전까진 징징 짜던 주제에(뭐, 나도 그렇지만..). 
그래도, 정말 아름답다. 아마, 은하수가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아직 플라네타륨에서밖엔 본 적이 없지만, 
언젠가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된다면 좋을 텐데. 살아 있는 동안은 어려울까. 
아니, 그래도, 난 보고 싶어. 아주 가까이서. 그곳에 닿기 위해, 난 노력하고 싶어.  -카즈키- 

페리라는 것에 처음 탔다. 자전거를 탄 채로 오르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폐옥에 텐트를 쳤다. 순경 아저씨한테 혼났다. 
비탈길에서 추월해 갔던 패밀리 카가 꼭대기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주먹밥을 주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에게서 알루미늄 냄비로 밥 짓는 법을 배웠다. 
도중에 몇 번인가 사일로에 건초를 쌓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호숫가에 텐트를 쳤다가 만조 때 자던 채로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 
남빛 바다를 보았다. 도로를 가로지르는 구름의 그림자를 보았다. 
달리고 먹고 자고 또 일어나 달리고. 
페달을 너무 밟아 신발 밑창이 빠졌다. 
차에 치인 갈매기를 보았다. 
내 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에 휩싸였다. 
그리고, 난생 처음, 비가 끝나는 곳을 보았다.  -다케모토- 

땅 끝은 아주 쓸쓸한 곳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밝고, 후련한 곳일 줄은, 미처 몰랐다. 참 이상하다. 이렇게 멀고도 먼 땅 끝인데. 
미처 몰랐다. 설마 내 집 문이, 「어디든 갈 수 있는 요술 문」이었다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면, 어디든 갈 수 있는 것이다. 
청춘의 18세 티켓도 은하철도의 초록색 티켓도, 아무것도 없어도 내 다리를 교차해 앞으로 내밀기만 하면. 
참 바보 같아. 그런건 초등학생도 알텐데. 아니, 나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여기 오기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 풍경을, 보게 되어서 다행이야. 돌아가자. 네가, 그리고 내가, 모두가 사는 곳으로. 돌아가자. 다시 같은 수만큼 페달을 밟아.  -다케모토- 

내내. 내내 생각했다.「돌아보지 않고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그런 식으로 달려나갔던 그 이유를...이제야 알겠다. 
아마도 난 등 뒤에서 멀어지는 나 자신의 모든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고 싶었던 것이다. 감당하기 버거운 미래도. 불안한 방황도. 
그것을 던져버릴 수 없는 나 자신도. 아무리 발버둥쳐도 답이 나오지 않는, 그 나날 조차도... -다케모토- 

아무것도 없었어....하지만, 밝았어. 하늘이 무척 아름다웠어. 네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돌아가자 했어. 
하구미, 난.. 네가 좋아.  -다케모토- 

열이 있는 너의 손은 뜨겁고, 움켜쥐니 미끌미끌, 땀이 베어나왔다. 
살아 있다고 생각했다. 살아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돌아오길 잘했다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내 방 냉장고는 여전히 텅 비어 있지만, 그 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는다.  -다케모토- 



「하구미, 난 네가 좋아.」 
그 뒤로 하구미는 왠지 내 곁에 오려 하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 나갔다. 컵에 한 가득 찬 물이 순간 와륵 넘치듯... 
그녀의 대답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저 그때 난, 가슴이 벅차도록 행복했다. 
말하지 않았어야 했던 걸까. 하지만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고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줄 수 있는 것이라곤 마음밖에 없어서. 그걸 네게 주고 싶었을 뿐인데.  -다케모토- 

많이 먹고, 푹 자고, 제 시간에 일어나, 죽어라 일하고. 
네가..나 아닌 다른 사람을 아무리 소중히 여긴다 해도. 그걸 내 앞에서 과시한다 해도. 뚝 부러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마야마가 그 사람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불안해 하는 표정을 봐도. 내 마음이 사정없이 구겨지지 않도록. -야마다- 

소리도 없이 깜빡이는, 별빛 같은 가로등불. 닿을 수도 없는 플라스틱 모니터 너머의, 작디 작은 그녀의 고향... 
데려가 주고 싶은 거구나. 옆 얼굴을 보고 그걸 알았다. 
왠지 이상해. 상대는 그렇게 어른인데, 넌 지금 어린아이의 아빠 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 
그런 얼굴 정말 보고 싶지 않지만. 지금까지 봤던 것 중에서 제일, 상냥한 얼굴이야.  -야마다- 

이제 다 됐어. 조금만 더 있으면 네 바람은 완전히 사라지겠지. 
그래, 야마다 씨.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그 남자는, 다른 여자와 멀리 가버릴 거야. 
또다시 넌 많이 울게 되겠지. 여태까지도 엄청 울었을 텐데. 
그리고 난 뒤엔 간단해. 네가 사정없이 널부러져 있을 때 나타나, 그럴듯한 표정으로 네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냥한 말 좀 건네고, 조금 꾸짖어 주고 하면 끝인거야. 
간단한 일이야. 그러니 아무 말도 할 거 없어. 지금은. 말하지 않아도 돼. 이대로. 아무 말도... 
아직은 좀 더 울어야 한다구. 내가 위로해줄 수 없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혼자서.  -노미야- 

리카. 그래도 하루하루는 흘러서..이 그림 엽서처럼 바래지고..「행복해지고 싶다」고 생각할 때마다 살아 있는 것이 고통스러워져. 
내게 가당치 않은 소원이란 생각과, 더 이상은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거란 예감이 들어서. 
그래서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묵묵히 이 밤을 지내는 것뿐이지만... 
이 아이가 나를, 여기까지 걷게 해주었듯, 지금 네 곁에 있는 그 남자가 부디 널 내일로 데려가 주길.  -슈이치- 

「굉장해..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 그렇구나. 다들 이 시간을, 돈을 주고 사는구나.」 
그녀의 혼잣말 같은 중얼거림이 빗물에 번진 풍경에 부드럽게 녹아들어, 
졸립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마야마- 

몇 시에 일어날지를 묻고, 자명종을 맞추고, 방의 불을 끄고,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내내 곁에 있을 수 있고... 
너무 행복하고, 가슴이 벅차고, 애가 타고, 머리가 쿵쿵 울린다.  -마야마- 

그래, 봤어. 메일도 FAX도 우편도 서류도. 전부 다. 당신 일이라면 뭐든 다 알고 있어. 
이젠 뭐든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하라다 씨가 남긴 일을 전부 정리했으니, 전부 끝내자 생각하는 거지?! 
나랑 얽혔던 게 실수였어. 어디까지라도 쫓아가고 말 거야. 그렇게 쉽게 죽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마! 
....부탁이야. 제대로, 살려고 해 봐.  -마야마- 

리카 씨가 떠날 무렵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난 안다. 
가끔 리카 씨한테서 걸려오는 전화에 답하는 목소리에 지금까지와는 어렴풋이 다른 침착하고 깊은 음성이 섞여 있다. 
그래, 그는...서로에게 상냥해지는 걸 허락받은 거야...  
전화 목소리를 들은 것만으로 알 수 있었다. 뭔가가 그 두 사람 사이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알아버렸어. 왜냐하면, 늘 봤는걸. 내내, 내내, 내내. -야마다- 

이 향기가 거리에 넘쳐날 무렵이면 매년 학교 축제 준비가 시작된다. 학교 건물의 오렌지색 불빛. 
금목서의 향기 속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등을 찾아 만날 수 있을 만한 장소를 몇 번이나 걸었다. 
아주 잠깐이라도 모습을 보고싶어서.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길고. 길고. 길었던. 나의 사랑.  -야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있으면,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그때까지, 혼자 울라구. 
제발 부탁이니, 다른 녀석 앞에서 울지 마, 응?  -노미야-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은 기분에 뛰쳐 나왔다. 사실은 전화하고 싶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아주 많았다. 듣고 싶은 얘기도.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왠지 너무 싫었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을 하면 마야마를 내내 좋아했던 마음이, 모두 거짓말이 되고 마니까. 
남들이 보기엔 아무리 한심해도, 볼품 없고 초라해도, 그를 사랑하는 이 마음 단 하나가, 차갑고 밝은, 내 보물이었다.  -야마다- 

하느님, 난. 위로 따위 받고 싶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마야마만 생각하며 울고 싶었다. 
10년이든 20년이든 언제까지나 좋아하며 내가 얼마나 그를 좋아하는지 세상에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봤자 아무런 의미 없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사랑이 이렇게 괴로운 거라면,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야마다- 



어마어마하게 큰 걸 만들려고 했다. 처음엔. 큰 걸 만들려면 그보다 더 큰 발판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한 법. 
그리고 그 작업은 지루하고 단순하고 끝이 없는 일. 하지만, 왠지, 이젠 괜찮아. 
와츠카나이까지 자전거로 달렸다고 하면, 다들 「굉장하다」고 놀라지만, 나는 그저, 오른쪽, 왼쪽 교대로 페달을 밟았을 뿐. 
오른쪽, 왼쪽, 오른쪽, 왼쪽... 그저 끝없이. 그걸 알았으니 이제 난 괜찮아.  -다케모토- 

해보고 싶은 게 아주 많아. 새겨보고 싶은 것들이 끝도 없이 흩어져 있어. 새로운 상자를 열 때마다, 수많은 「?」들이 튀어 나온다. 
나는 그 하나하나를 붙잡아, 격투하고 맛을 확인하고 삼키고 이름을 붙여야 할 곳에 돌려 놓는다. 
그러기 위한 방대한 시간. 이 상자를 전부 열고 싶어. 하지만 전부 열기엔 인간의 일생은 너무 짧아. 
인생이 400년쯤 되면 좋을 텐데 하는, 해봤자 소용없는 생각까지 하게 돼. 
한 사람의 인생에서, 열 수 있는 상자의 수는 한계가 있어. 하지만 함께 싸워줄 사람이 있다면...  -하구미- 

입 밖에 내선 안돼. 언제까지나 함께 싸워 주세요 하고...그에겐 그의 인생이 있는걸. 내겐. 내겐 그것을 빼앗을, 권리가 없어.  -하구미- 

하지만, 우리는 결국 마지막까지 다 함께 바다에 가지 못했다...왠지, 단 한 장의 사진도 남아 있지 않던 우리에겐, 그때, 눈앞에 떠오른, 
모두가 함께 있는 풍경만이 눈동자 속에 새겨져, 평생 잊을 수 없는 한 장이 되었다.  -다케모토- 

어째서 이 세상은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로 나뉘는 걸까. 
어째서 「사랑받는 자」와, 「사랑받지 못하는 자」가 존재하는 걸까. 
누가 그것을 나누는 것일까. 어디가 갈림길이었을까. 
애초에, 갈림길 따위가 있기나 했을까? 처음 태어났을 때 이미 전부 다 결정되어 있었던 건 아닐까? 
그렇다면, 아아 하나님. 나의 인생은, 무엇을 위해 있었던 겁니까? 
츠카사..그러니 부디 보여줘. 나와 마찬가지로 「인간으로서 발버둥치는」추한 모습을. 
아니면, 처음부터 다른 세계의 인간이었다는 걸 깨닫게 하고는, 산산히 부숴, 날 수렁 속으로 돌려 보내줘.  
츠카사..츠카사..그러니까 제발, 보여줘. 너의 빛이 진짜인지.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 빛이 바래지 않을지.  -네기시 타츠오- 

왠지 이제야 겨우 잠들 수 있을 것 같다...왜 그랬을까. 요즘 통 잠을 자지 못했거든. 하지만 이제 겨우 잠들 수 있을 것 같아. 
깊이. 깊이. 마치, 수렁처럼.  -네기시 타츠오- 

안돼. 아빠. 난 안돼. 난 저 녀석처럼 빨리 달릴 수 없어. 그치만 아빠. 난 이해하는걸. 아저씨의 심정을. 
아빠. 난 오래 전부터 시노부가..그리고 아빠가 부러웠어. 왜냐아면 아빠. 난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거든. 
그래.. 나도.. 내게도. 나밖엔 하지 못할 일이 꼭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어.  -카오루- 

이 하마비 축제가 끝나면, 아마 졸업까지 「눈 깜짝할 사이」겠지.. 왠지 상상이 안돼. 
다케모토는 일본 어딘가에서, 야마다는 도쿄에서, 나는 나가노에서. 이제 그리 쉽게 만날 순 없을 거야. 그치? 
「오늘 점심은 뭘로 할까?」라든가. 마루에이 베이커리에 함께 간식거리를 사러 간다거나.. 그런 것들.. 
당연스레 매일 함께 했던 것도.. 이젠.  -하구미- 

..무서워. 다케모토.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의 소중한 인생을 바꾸면서까지 선택해야만 할 길이란게 뭐지? 
난 그것 대신, 교수님에게 대체 뭘 줄 수 있지. 
무서워. 왜냐하면.. 교수님은 틀림없이 전부 다 주겠다고 할 테니까. 인생이며 피며 살덩이까지도.  -하구미- 

설마. 아니겠지. 아닐거야. 아니어야 해. 제발. 아아. 거짓말이야. 거짓말 이지? 이런..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전까지. 바로 방금 전까지. 내앞에 있었다구. 그런데, 어떡하지. 이건 현실이다. 
-나와 야마다 씨는 유리조각을 줍는 축제 준비회 스태프 속에서 빗자루와 양동이의 물로, 아스팔트에 고인 피를 씻어냈다. 
내가. 내가 좋아하는 여자 아이의 피를.  -다케모토- 

이대로가 좋아. 약 먹으면 알 수 없게 되거든. 이 손, 만일 이대로 아픈 게 느껴지지 않게 된다면, 
「신경이 연결되지 않았다」는 거잖아? 그럼 재수술은 한시라도 빠른 편이 좋은 거잖아. 
그렇다면 지금은, 아픈지 어떤 건지 빨리 알아야지.  -하구미- 

교수님. 왔어. 아픈게.. 왔어.. 손.. 괜찮아. 연결되어 있어. 내 손.  -하구미- 

진통제도 안정제도 거부하고, 잠도 이루지 못한 채 오직, 어둠을 향해 시선을 모으고.. 
솔직히 말하면, 압도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야마다 씨도, 나도. 
그녀 안에 있는 강인함에. 고통조차도 비틀어 굴복시킬 정도로 강인한 의지에.  -다케모토- 

그래. 다들 아마 그렇게 생각할 거야. 그래서 모두들 그녀와 거리를 두고 있는 거야. 
「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을 것 같으니까」하면서. 그리고, 결국 그녀는 외톨이가 되고 만 거지. 
지금은 「움직이고」「움직이지 않고」의 경계에서 죽을 힘을 다하고 있겠지만, 
아마 그녀가 고통스러운 건, 이제부터 시작될 재활 치료일 거야. 
야마다 씨, 당신은 남아 줘. 남지 않으면 안돼. 친구잖아?  -노미야- 

그 밤 이후로, 하구미의 왼팔에 붉은 꽃 반점이 퍼지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물어 버린 듯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반점은, 교수님의 팔로 옮겨졌다. 
교수님은 무서울 정도로 침착했다. 하구미를 위해 절대 흔들리지 않겠노라 결심한 거겠지. 
난.. 이대로 정말 떠날 것인가? 그런 모습인 그녀를 그대로 놔둔채? 
마야마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만일 좋아하는 여자애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아무 생각말고 당분간 쉬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는 돈을 가지고 있고 싶어.」 
지금 그 말의 의미를 절감한다. 
그런 싸구려 꽃 한 송이도 제대로 사주지도 못하는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 아이를 구할 수 있을 리 없지. 
질끈 감은 눈 안쪽에, 그 붉은 빛이 들러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내가 원해도, 그 반점이 내 팔에 피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다케모토- 

괜찮아. 괜찮아. 아무리 남보기에도 영락없는 「실연」100%라도. 비참하기 그지 없어도. 
꽃다발 하나 사지 못할 만큼 보잘 것 없어도. 지금 괴로운건 그녀.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건 그녀. 
「나는 무력하다..」라고 하면서 나 자신을 동정하며, 머리나 감싸쥐고 주저 앉아 있을 때가 아니야! 
틀리지 않았어. 틀리고 싶지 않아. 그 정도는, 남자이고 싶어.  -다케모토- 

교수님. 사실은, 무서워.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아. 이대로, 낫지 못하면 어쩌지? 그릴 수 없게 되면? 
교수님. 「산다」는 게 뭐야? 숨 쉬고, 밥 먹고. 나머지 시간은 뭘 하면 되는 거야? 모르겠어.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니.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죽을 때까지 라니. 그 긴 시간이 무서워.  -하구미- 

어릴 때, 딱 한 번 신을 보았다. 
친구 하나 없이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죽어라 노트에 그림만 그렸었다. 
그리고 어느날, 문득 생각했다. 「만일 여기 종이와 연필이 없다면 나는 어쩌고 있었을까?」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외톨이로 대체 어떻게? 
그리고 깨달았다. 아아, 그래. 이 종이와 연필이 늘 함께 있어줘서 괜찮았던 거야. 
「그림을 그린다」는 이 행위만이, 「나」를 「지켜주고」「살게」해주는 거야. 
그렇게 생각했을 때, 비 내리는 창 밖이 흐릿하게 금빛으로 빛나더니... 
그리고 나는 말을 걸었던 것이다. 그 빛에. 
「만일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는 날이 온다면, 그 자리에서 이 목숨을 돌려 드리겠습니다」라고... 
그 때 나는 「약속」을 했던 것이다. 분명히. 눈에는 보이지 않는, 나의 신과.  -하구미- 

됐어. 더는 그리지 마. 그리지 않아도 돼. 뭔가를 남기지 않으면 살 의미가 없다느니, 그런 바보 같은 소리가 세상에 어딨어. 
그냥 살아주면 돼. 함께 있을 수만 있으면 돼. 난 이제, 그거면 돼.  -모리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상냥한 말이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다. 
상냥하고 상냥해서, 너무나 슬픈 목소리. -마치, 어딘가 먼 곳의 누군가를 부르고 있는 것 같은. 
왜냐하면 처음 듣는 걸. 이 사람의 이런 목소리.  -하구미- 

교수님, 왜 말하지 않는 거에요? 하구미에게. 「날 선택해 달라」고 말이에요. 
하구미를 위해서라면 이렇게까지 모든 것을 내팽개칠 수 있으면서? 
난 말했어요. 희망 따위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이젠 다 틀렸다는 거 알았지만, 그래도 분명히 말했어요.  -다케모토- 

돌아갈거야. 돌아가지 않으면.. 손.. 손이 죽고 말아. 그것만은 싫어. 절대로 안돼.. 그릴 수 없게 되면, 나도 죽어.  -하구미- 

지켜봐 줘. 나을 테니까. 꼭 나을 테니까. 아니, 낫지 못해도, 아무것도 남기지 못해도 괜찮아. 
이제 알았어. 그리고 싶어. 이것 외의 인생은, 내게 없어. 
어젯밤 해준 얘기, 정말 기뻤어. 잊지 않을거야. 나도 쭉, 당신을 지켜볼 거야.  -하구미- 

있잖아. 나 부탁이 있어. 교수님의 인생을 내게 주세요. 미안해. 갚을 수 있을지 어떨지도 모르는데, 이런 말 해서. 
하지만. 하지만 나, 그리고 싶어, 계속. 그러니, 함께 있어 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하구미- 

비가 좋다. 세상의 윤곽이 뿌옇게 흐려져, 나도 함께 빨려 들어갈 것 같다. 
슈지 오빠의 방이 좋았다. 책 냄새, 스케치북과 그림 물감이 묻은 책장. 
빗소리가 좋다. 마음이 한없이 차분해진다. 마치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져 주는 것 같다. 산도 나무도 풀도 지붕도. 그리고 나도.. 
-아아, 그래. 비다. 교수님은 비를 닮았어. 그 모습을 보기만 해도 마음이 놓여.. 울고 싶어지고 만다. 
길을 잃으면 언제든 꼭 찾으러 와 주었다. 언제나 상냥하게 손을 내밀어 주었다. 그 손은 늘 따뜻했다. 
그래, 교수님은 틀림없는 나의 비다. 함께 있으면 깊이 숨을 쉴 수 있고, 풀이나 나무처럼 쭉쭉 자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늘 난감한 얼굴로 상냥하게 웃는, 나의 소중한, 소중한 사람.  -하구미- 

재능. 재능. 재능. 
그렇게 모두들 다른 사람을 멋대로 좋아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급기야 말없이 떠나간다. 
허무했다, 이젠. 그만두고 싶었다. 모든 것을. 그래서 길동무로 삼으려 했다. 
알고 있다. 나는 어리광을 부렸던 거야. 그렇게 약한 그녀에게.. -최악이다.  -모리다- 

모리다 :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 두고 보라구! 
슈이치 : 그래. 두고 볼게. 꼭 고칠 거야. 그래서 반드시 다시 그릴 수 있게 될 테니. 안심해라. 
모리다 : 너, 그 녀석을 좋아하냐?! 
슈이치 : 오냐, 좋아한다. 엄청 좋아한다! 

사는 의미를 무엇에 거는가..그 차이라고 생각해. 
그게 「사랑」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좋고 싫고와 상관없이, 뭔가 「이루어내야만 할 것」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있어. 
어느 쪽이 옳고 그르냐가 아니라, 모두들 그 순간은 그야말로, 본능에 판단을 맡길 수밖에 없을 거야.  -마야마- 

난 좋아서 여기 있지만, 자네는 출구를 잃어 이곳에서 움질일 수 없게 된 걸로만 보였어. 
하라다가 그렇게 된 뒤로, 솔직히 자넨 쳐다 봐줄 수 없는 지경이었어. 마치 자네의 반쪽이, 그 친구와 함께 저세상으로 가버린 것 같더군. 
그런데, 그 아가씨를 데리고 온 뒤로 자네가 점점 이쪽으로 돌아오는 게 보였어. 
이번엔 자네가 그 아이를 구해줄 차례야. 그건 자신을 살리는 것이기도 하지.  -탄게 교수님- 

그건 안돼. 내가 싫어.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그만 솔직하게 가자구. 계산이니 그런 거 전혀 없이. 
난 네가 좋아.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참는 건 무리야. 솔직히 마야마 문제로 언제까지고 끌려다니는 건 괴로워. 
하지만 그건, 떨어져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 난. 
함께 있자. 싸워도 나쁠 거 없잖아. 터놓도 다 얘기하자. 모든 건 그 다음부터야. -노미야- 

「계속 지켜 보겠다」고 하더라. 강한 여자라서.. 간파한 거야, 날. 모든 것을 내던져 버리려 했던 거.. 
「도망치지 말고 함께 발버둥 치자」고..「도망치는 건 한순간이며 할 수 있으니까」라고.. 
아무리 그래도 정말 너무해.. 「계속 지켜보고 있을게」라고 하니, 이젠 죽어라 노력하는 수밖에 없는 거잖아. 
그래도.. 다시 한 번 말끔하게 마무리 짓고 그 녀석 앞에 서고 싶어.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서 이 녀석에게 보여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니까, 비로소.. 눈 앞이 환해지는 것 같았어.  -모리다- 

꽃잎이 그야말로 굉장한 기세로, 종이 꽃가루처럼 흩날려 꿈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도교에서의 지난 5년.. 전부가, 꿈 속에 있는 듯한 나날이었다.  -다케모토- 

하구미 : 다케모토가 고쳐 주는 절은 정말 행복할거야. 
다케모토 : 응? 
하구미 : 그 탑 만들 때, 내내 지켜봐서 알아. 다케모토는 대충 하거나 꾀를 부리거나 하지 않아. 
        틀림없이 온 마음을 담아 고쳐줄 거야. 그러니까 아마 절도 기뻐할 거야. 
        나도, 열심히 할 거야.. 다케모토한테 지지 않을 정도로, 꼭 나을 거야. 
        그러지 않으면, 교수님에게.. 아무것도 갚을 수 없게 되고 말아... 
다케모토 : 하구미, 그건 아니야. 아무것도 갚지 못한다 해도 괜찮은 거 아닐까? 그건..교수님이 스스로 찾아내야 할 것이지, 
          하구미가 줄 건 아니라고 생각해. 그리고 교수님은, 충분히 그걸 찾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난 생각해. 

역으로 향하는 강변 길에서, 그녀를 보았다. 
이제 단골이 된 그 빵가게에서 평소처럼 빵을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가 점심을 먹고 재활치료를 하고 캔버스를 마주하고. 
이 거리에서, 그녀의 일상은 계속된다. 
작별 인사는 어젯밤 다 했으니, 이젠 말을 걸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저 묵묵히 보고 있었다. 
말을 걸면 안돼. 틀림없이 지금 말을 걸었다간,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고 말 거야. 널 곤란하게 만들고 말 거야. 
그런 식으로 작별을 한다면.. 아마, 그땐 정말로, 다신 볼 수 없게 될 테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눈에 익은 강가 풍경과 너와, 모든 것이. 봄볕에 물들어 핀으로 꽃은 그리운 사진처럼, 그저. 그저. 한없이 아름다웠다.  -다케모토- 

세상 모든, 세상 모든 행복을 당신에게. 
처음엔, 첫눈에 반한 데서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강인함이, 연약함이, 모든 것이. 내게 끊임없이 질문을 해왔다. 
-당신은 누구? 하고. 나는 누구지? 하고. 
필사적으로 뭔가를 찾던,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 여자아이. 
-나는 내내 생각했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의미는 있을까 하고. 사라져 버리고 만 것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인가 하고.. 
이제는 알겠다. 의미는 있다.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이 추억이 되는 날은 반드시 온다. 하지만. 
내가 있고, 네가 있고, 우리가 있고. 단 하나의 뭔가를 찾던 그 기적같은 나날은, 
언제까지고 달콤한 아픔과 함께, 가슴 속의 먼 곳에서 영원히, 그립게 빙글빙글 돌 것이다.  -다케모토- 

하구미. 난, 널 좋아하길 잘했어..  -다케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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